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자리한 '사랑해 벽(Le mur des je t'aime)'은 612개의 파란 타일 위에 250개 언어로 '사랑해'라는 문구를 담은 작품이다. 이 벽의 캘리그래피를 맡은 사람이 바로 클레르 키토(Claire Kito)다. 키토는 1964년 파리에 설립된 유럽 최초의 동양미술 교육기관인 파리동양미술학교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응노, 박인경 화백에게 직접 사사했다.
이응노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37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스승의 가르침을 어떻게 품어 자신만의 예술 세계로 펼쳐왔을까? 인간과 자연, 우주를 아우르는 그녀의 작업 세계를 마주하며 동서양을 잇는 예술의
오션릴게임 여정과 스승의 정신이 어떻게 이어져 오는지 들어보았다.
▶ 동양 서예와 수묵화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느낀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서양의 전통적인 조형예술 교육을 받았고 그
바다이야기오락실 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며 포스터, 로고와 심볼을 만들어왔습니다. 글자를 다루는 일과 흑백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만큼, 아시아 서예가 제 삶에 들어온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서예와 수묵화는 차근차근 배워 나갔지만, 서양식 교육과 동양 미술의 새로운 시선 사이에서 늘 작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빛과 그림자로 대상을 관찰하고 목탄이나 연필처럼 고쳐
릴게임가입머니 그릴 수 있는 재료로 작업해왔는데, 이 분야에서는 하나의 요소를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수정 없이 한 번의 선으로 그려내야 했습니다. 선 그 자체가 곧 힘이고 볼륨이며 회화였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손에 밴 습관은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 이응노 선생님과 박인경 선생님의 첫 만남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그의 수업 방식은 어떠했
바다이야기합법 나요?
"파리동양미술학교(L'Acad?mie de Peinture Orientale de Paris)의 수업은 파리 시립 동아시아 미술 전문 기관인 세르누치 박물관(Mus?e Cernuschi)에서 열렸습니다. 이응노 선생님은 '문인의 네 가지 보물' 문방사우를 소개한 뒤, 아무 말 없이 제 손을 잡고 함께 '한 획(一)'을 그으셨습니다.
릴게임사이트추천 수업은 침묵 속에서 흘러갔고 먹을 갈고 획을 긋기를 거듭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집중도 깊었고, 감정도 그만큼 깊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수업에서 이응노 선생님은 붓 하나에 여러 농도의 먹을 머금게 하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시고, 제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려보라 권해주셨지요. 정말 가슴 깊이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응노 선생님과 박인경 선생님은 학생 개개인이 필선을 보완하며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점은, 그분이 결코 자신의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학생들 역시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저마다의 예술이 깊이 있게 피어날 수 있도록, 섬세한 몸짓과 시선, 그리고 의미 있는 말을 건네주셨습니다."
▶ 이응노 선생님의 작품에는 항상 인간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런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당신의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이응노 선생님의 작품에서도 인간은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후기 작업에서 인간들은 하나의 기호처럼 그려지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군중의 행렬을 이룹니다. 저 역시 늘 인물과 얼굴, 군중을 그려왔는데 이 인간의 모습은 제가 걸어온 길과 머문 곳, 그때그때의 관심사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누드 크로키와 해부학을 공부하며 작업했습니다. 이후 도시에서 살아가며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모습을 관찰하고 그렸습니다. 그러다 파리 교외의 군중에 깊은 인상을 받아 서로 교차하고 겹쳐지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폭에 쌓여가는 군중의 밀도는 저를 시각 너머의 감각으로 이끌었고, 그 안의 세계가 곧 작업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 프레데릭 바롱과 함께한 '사랑해 벽' 작품에서 250개 언어를 하나의 서예작품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미학적 원칙이 있었나요?
"프레데릭 바롱이 수집한 문자들은 서체와 굵기가 매우 다양했습니다. 저는 먼저 글자마다 굵기를 다듬어, 어느 한 글자가 두드러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글자들을 어우러지게 놓을 때는, 각 글자가 지닌 감각을 따라가며 커다란 퍼즐을 맞추듯 배치해 나갔습니다. 글자마다 힘이 실린 곳, 서로 호응하는 선들을 살폈습니다. 특히 저는 상상의 여백을 열어주는 낯선 형태의 문자들을 좋아했습니다. 시선이 자유롭게 흐르고 곡선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예기치 못한 마디나 끊김이 나타나도 그저 흐름에 맡기는 것이 제 작업 방식이었습니다."
▶▶[관련 인터뷰] 파리 몽마르트 ‘사랑해 벽’, 25년의 기록과 한불 140년의 만남
▶ 2025년 11월 개인전 Interrogations (질문들)의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질문’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근 전시된 작품들은 2020년 팬데믹 봉쇄 기간에 시작된 것입니다. 전 세계가 '이 바이러스가 세계를 뒤덮을 것인가? 우리는 정말 거대한 재앙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와 같은 묵직한 질문들과 씨름하던 시기였죠.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언젠가 인간의 생명 자체가 지구에서 사라질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지구마저 돌이킬 수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마주한 순간이었습니다. '덧없는' 자각이었지요.
그래서 이제는 인간을 한 사람으로, 또는 군중으로 재현하는 일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을 우주의 일부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군중은 풍경이 되고, 대지의 퇴적물이 되며, 물결처럼 흘러가고, 구름 속으로 흩어지며, 마침내 우주의 일부가 됩니다. 작품에 거듭 등장하는 점과 얼룩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담아냅니다. 침술의 '혈'처럼 에너지와 호흡이 머무는 자리이자 시선을 이끄는 길잡이입니다. 회화적으로는 화면에 깊이를 주고, 또 뒤로 물러나거나 앞으로 다가서는 감각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 향후 작품 방향성이나 새로운 도전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최근에는 전시 준비로 바빠 붓에서, 다시 말해 제 생각에서 잠시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붓을 들고 인물을 그리고 글자를 써가며,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어디로 여행하게 될지 마주하고 싶습니다. 그 안에 점이나 검은 얼룩이 다시 떠오를지도 궁금합니다.
한편, 저는 시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나라(1127?1206) 양만리(楊萬里)의 시 한 구절이 떠올라, 그 구절이 제게 불러오는 울림을 작업으로 이어가보고 싶습니다."
뜰의 물웅덩이는 쓸어내지 마라,나는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무늬를 보는 것이 좋으니.
이응노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그가 파리에 남긴 동양 미술의 자취는 지금도 살아 움직인다. 붓의 호흡과 선의 리듬, 그리고 인간을 향한 시선은 시간을 건너 제자들의 손끝에서 각기 다른 언어와 형식으로 다시 피어난다. 클레르 키토와 같은 작가들이 스승의 정신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일구어가는 모습은 예술 교육이 기술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를 감각하고 사유하는 방식을 건네는 일임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키토의 작업은 점차 인간의 형상을 넘어 우주적 풍경으로 펼쳐지며 인간과 자연, 존재와 시간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든다. 이는 스승이 평생 탐구한 인간 중심의 사유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 결과이자 그 사유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파리=한지수 미술 칼럼니스트